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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식 최대 인구 밀접 주거지 `구룡성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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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건들이 쪽지보내기 마이페이지 아이디로 검색  (125.141) 작성일 21-02-09 19:37 조회 1,844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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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룡성채는 원래 청나라의 요새였는데


아편전쟁으로 홍콩섬이 영국의 식민지로 영구할양되자

 

청은 구룡성채를 영국을 감시하는 기지로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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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0년대 구룡채성)

 


2차 아편전쟁 후 북경조약에서 청은 구룡반도까지 영국에 영구할양하였고,


구룡성채는 자연히 영국령 홍콩의 영역이 됨.

 

물론 청은 성채만은 내줄 수 없다며 청의 군인들과 행정관들이 주둔함.


세금도 북경으로 계속 냄.

 

그러나 영국군은 성채를 공격해 청군을 쫓아 버렸고,


이후 이 성채는 영국과 중국 둘 다 관리하지 않아 버려지기 시작했다.

 

성채는 신해혁명으로 청이 멸망하자 중화민국의 영토가 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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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군이 쫓겨간 뒤에는 국공내전이 이어져 광동성에서 많은 피난민이 홍콩으로 몰려왔고

 

이들은 구룡성채에 정착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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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이곳을 실질적으로 통치하던 집단은 삼합회


삼합회는 1974년까지 구룡성채를 지배하다가

 

홍콩경찰이 대테러부대 등을 동원한 대규모 검거작전에 쫓겨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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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거 건물들이 마치 성벽처럼 따닥따닥 붙어 있어 한때 인구 밀도가 가장 많은 곳이기도 했다.

 

일본이 세계2차대전때 이곳을 점령하였으나 일본 항복 후인 1948년 불법거주자들이 이곳에 몰려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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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후 1950년대부터 1970년대까지 구룡채성은 갱단,마약,도박의 본거지로 전락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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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7년 1월 홍콩 정부는 구룡채성 철거 계획을 발표했고

 

1993년 3월부터 강제 철거를 하기 시작하여 이듬해인 1994년 4월에 마무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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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쥐와 바퀴벌레가 그렇게 많았다고  함

 

구룡성채 철거할때 주변 지역이 극심한 피해를 입었음)

 

구룡성채의 남문과 야멘(yamen 衙門)인 관아만 남겨두고 모두 철거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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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이 터에다 구룡채성 공원을 조성하여 1995년 12월에 문을 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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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구룡채성 상공에는 항공기들이 매우 낮게 비행하는 모습들을 볼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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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유는 구룡채성 인근에 지금은 없어진 카이탁 국제공항(1925~1998년 폐쇄)이 들어서 있었다.

 

공항 북쪽에는 산맥과 수많은 고층 건물들이 있어 착륙이 더 어려운 빅토리아 항구쪽으로 활주로 이용하다 보니 착륙 비행기들은 구룡채성 

상공을 저공으로 비행할 수 밖에 없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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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변 건물을 6층이상 짓지 못하는 규제가 있었지만

 

치외법권이였던 구룡성채는 무시하고 15층까지 불법 증축이 되었다.

 

정말 아슬아슬한 활주로가 아닐 수 없었다. 지금은 이 공항은 폐쇄되고 신 공항으로 이전된 상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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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악의 랜딩 환경으로 초보 기장은 보내지 않았던 카이탁 공항으로 가는 케세이 퍼시픽 여객기

 

 

 

당시의 생활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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햇빛은 한가운데 쪽에서만 보였음.


1인당 평균 1.1평을 점유하는 극악의 구조였기 때문에 화장실과 세면장은 공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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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반 가정집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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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반 가정집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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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매처럼 보이는 치과도 있었다.

 

특히 야매 치과의사들의 비위생적 무면허 진료는 큰 문제였음

 

 

제일 심각한 건 햇빛도 들지 않는 어둠의 세계였기 때문에 범죄율이 높았다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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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룡성채의 전형적인 계단과 복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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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편배달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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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채 주민들이 자체적으로 운영하던 학교도 있었고,

 

연장자를 위한 양로원도 있었으며 이발소도 있었음

 

(사진 중간에 보이는 낮은 지대는 노인정과 유치원, 학교가 있는 곳, 과거에는 청나라 관청이 있었음)

 

국수, 만두, 죽을 파는 식당도 있어서 성채 주민들이 이 곳에서 식사를 해결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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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제 거주하고 생활하는 구룡성채의 가게와 주민의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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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지어 성채 내 비밀공장들 중에는 시내에 내다 팔 에그타르트나 딤섬, 장난감을 만드는 공장도 많았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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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매매가 공식적으로 이루어진 건 물론,

 

홍콩에서 금지된 개고기를 파는 식당이 즐비했으며 마약소굴도 여러 곳 있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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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선도 손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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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장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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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콩인들이 즐겨 먹는 어묵을 튀겨내던 공장 같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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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채 주민 중에는 심지어 성채 밖으로 한번도 나가보지 못한 사람도 많았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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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구 밀집이 극심하다보니 쓰레기 역시 넘쳐 났다.

 

그리고 건물 옥상으로까지 쓰레기가 널려있고 복도에는 살찐 쥐들과 바퀴벌레가 득실거리는 더러운 환경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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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 작은 도시와 비슷했다.

 

성채는 치외법권 지역이었던 만큼 홍콩에선 금지된 온갖 어둠의 요소들이 판을 쳤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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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두 힘을 합쳐서 도둑을 잡자",

 

"이곳에서 강도질을 한 놈은 붙잡아서 손을 자르고 발을 자른다" 라는 글씨가 벽에 쓰여있다.)

 

당시 홍콩 정부의 가장 큰 문제중 하나

 

"아편굴 투성이에 쥐가 득실거리고, 치외법권이죠. 매우 위험한 곳입니다.

 

 말그대로 홍콩의 신시티(Sin city)예요"


-영화 <아비정전>을 구룡성에서 촬영한 배우 양조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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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0년대 이후 무허가 증축이 만연하면서 급속도로 슬럼가가 됨

 

0.03km의 면적에 5만여명의 주민이 살고 있었음.

 

인구밀도가 1,900,000명/km2로 역사상 최고의 인구밀도로 기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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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6년 더 이상 방치가 불가능하다고 판단한 홍콩 식민정부는

 

경찰 파견 등 구룡성채에 대한 실효적 지배를 시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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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찰이 들어오고 범죄자들이 모두 잡혀가자 치안은 급속도로 안정되었고

 

불량한 위생상태도 위생서의 단속으로 개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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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거직전 즈음의 집회와 경찰들의 모습)


그리고 1992년 홍콩정부는 이 성채를 철거해 공원으로 재개발 됨

 

이 때 성채 주민들과 토지보상 문제로 마찰이 빚어졌으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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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 슬럼화된 곳이라 사실상 부동산으로서의 가치를 상실하여 미미한 보상만 주어짐

 

27억 HKD를 들여서 구룡성채에 살던 3만3천여명의 주민들을 이주 시킴.(1991~1992년동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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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거 중인 사진)

 

철거는 1993~1994년에 이뤄졌고 그렇게 구룡성채는 사라짐

 

지금은 구룡채성 공원으로 변모하여 구룡의 관광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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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중경삼림 속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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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각기동대 속 모습)

 

 

(지구촌365일)

 

 

클리앙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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