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 [읽을거리] 이순신에게 개박살난 일본장수들을 알아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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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도 다카토라
"주군을 7번 바꾸지 않는다면, 무사라고 말할 수 없다."
전국시대부터~에도 시대 전기에 걸쳐 활약한 무장 겸 다이묘
대세를 따라 주군을 수 없이 바꾸어 섬긴 그는 여러 주군을 섬긴 인물답게
시즈타케 전투, 사이가 씨 정벌, 시마즈 정벌, 큐슈 정벌, 세키가하라 전투 등
굵직한 싸움에 대부분 참가하여 공도 많이 세워서 32만석의 영지를 하사받은 그는
이순신에게 여러 차례 박살났다.
옥포해전의 상대역
명량해전에서 10배의 병력으로 덤볐다가 화살 3대맞고 RUN
와키자카 야스하루
시즈가타케의 칠본창
아즈치 모모야먀 시대~ 에도 막부 시대에 활약한 무장이자 다이묘.
아케치 미츠히데의 부장이 되어 단바 공략전에서 공을 세웠다.
그리고 미츠히데를 떠나 히데요시를 찾아가 쥬고쿠 평정전에서 활약했으며
히데요시의 통일전쟁에서 활약하여 영지를 하사받았다.
용인 전투에서 1,600병력으로 50,000의 조선군을 궤주시켰던 그는
이순신에게 한산도에서 개박살이났다.
이후 무인도에서 미역빨면서 버티다가 구조됨.
임진년판 로빈슨 크루소찍고감
가토 요시아키
침묵의 용장
일본 전국시대, 에도 시대의 무장이자 다이묘이다. 통칭 마고로쿠
시즈타케의 칠본창 중 한명이기도 하다. 가토 카게야스의 추천으로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시동이되어
각지 전투에 참가한다. 큐슈의 시마즈 정벌, 오다와라의 호죠 정벌 등에 수군으로 참전했던 그는
불행히도 이순신과 싸우는 족족 개박살이났다.
구키 요시타카
해적 다이묘
본래는 해적 출신이였으며, 타키가와 카즈마스의 중개로 오다 노부나가의
휘하로 들어가 모리 수군을 상대로 펼친 활약으로 전국시대 최고의 해전 전문가로 이름을 날렸다.
이후 도요토미 히데요시 밑에서 임진왜란에 참전했던 그는
이순신에게 개박살이 났다.
이후 대장군전을 기념으로 가지고 RUN
구루시마 미치후사
센고쿠 시대의 무장, 무라카미 수군(왜구)의 가주이던 형 구루시마 미치유키가
당포해전에서 이순신에게 목이 달아났고 가주자리를 물려받은 동생 미치후사가
형의 복수를 위해 명량해전에서 선봉으로 자처했다. 하지만
형제가 나란히 이순신에게 목이 잘렸다.
다이묘가 전투중에 죽는 일은 어지간해서는 없는데
이순신에 대한 공포가 더해져 일본측 기록에는
"이순신이 입으로 번개 뿜어서 거기에 맞아 죽었다."
라고 기록했다.
이런 그를 가장 궁지몰았던 원균의 업적
- 임진왜란 시작과 동시에 경상우수영 판옥선 약 70척 말아먹음
- 이순신이 재건했던 약 180여척의 전선을 12개만 남기고 모조리 수장당함
- 단신의 몸으로 약 240척의 군선을 가라앉힌 전무후무한 인물
대단하다 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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