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군의 전설, 4사단 > 읽을거리/밀리터리

본문 바로가기
사이트 내 전체검색

읽을거리

밀리터리 일본군의 전설, 4사단

페이지 정보

본문

향토 연대주의를 채택한 일본군에서 4사단은 오사카 주변에서 병사를 징집했고, 

1871년부터 역사가 시작되어 메이지 시대에 활약한 전통깊은 사단이었고, 장비도 1선급 장비를 갖춘 갑종사단이었음

 

하지만 4사단이 전쟁에서 보여준 모습은 여타 다른 일본군과 전혀 다른 모습

 

 

러일전쟁 

싸우는 족족 패배, 돌격명령 내려도 병사들은 숨기 급급

너무 연전연패한 나머지 4사단 8연대는 “또 졌나, 8연대(またも負けたか八連隊)”라는 별명이 생김

 

그 결과 중일전쟁 발생시까지 4사단을 전선에 내보내지 읺고 본토에 박아놓음

 

 

중일전쟁

1937년 중일전쟁 발생,

병력이 너무 부족해지자 4사단을 만주로 보내고 관동군에 소속시킴

하지만 일본에서 가장 개막장인 부대라 일본군 수뇌부는 고심, 결국 육군 내에서 가장 유능한 장군인 '야마시타 도모유키 소장'에게 지휘권을 맡겼으나 그도 두손들고 포기함

(훗날 그 장군은 싱가포르 함락에서 큰 공을 세우고 말레이의 호랑이라 불릴 정도로 일본 내 몇 없는 명장임)

 

결국 주요 전투에 안 쓰고 후방 경비업무로 돌려지게 됨

 

 

노몬한 전투

1939년 7월 만주와 소련의 접경지역에서 충돌 발생

관동군은 예비대인 2사단과 4사단을 긴급 출동시킴

 

2사단은 근성론을 외치며 곧바로 강행군하여 4일만에 도착 후 전투,

하지만 4사단은 병에 걸렸다고 출동 못나간다고 배째는 병사들이 급증해서 빡친 연대장이 의무실에 앉아 직접 병사들 진단에 참여함

겨우 4사단이 병사들을 모아 출동했지만, 중간에 탈영병, 낙오병, 병사들의 태업이 겹쳐 8일만에 도착 (2사단의 두배)

 

2사단은 먼저 도착해 소련군과 교전, 막대한 피해를 입고 정전협상을 체결함

정전소식을 들은 4사단은 갑자기 낙오된 병사들이 돌아오고, 피곤에 찌들었던 병사들이 생기가 돌기 시작했음

그리고 뒤늦게 도착 (안싸움)

 

복귀 길에, 2사단은 병력 태반이 부상에 무기를 잃어버려 거지꼴인 반면 4사단은 병력도 완충, 모두 군복과 장비도 갖추고 사기도 높은 상황이라

관동군 선전장교가 빡쳐서 

흔히 쓰이던 관용어구 “우리의 무적(無敵) 황군”에서 한 글자를 고쳐 “우리의 무상(無傷 부상하나 없이 멀쩡한) 황군 제 4사단 돌아오다”로 헤드라인을 바꿔 신문에서 조롱함

 

236FBF4F55702FFE0F.jpeg.jpg

 

 

이 문제에 대해 일본군 수뇌부는 책임추궁을 하기보단 4사단을 남하시켜 전선이 넓어져 문제가 커진 중국 화중지역으로 보내기로 함

화중 전역에서 중국군 40만이 포위되었는데, 중국 장군 이종인은 악전고투 끝에 포위망을 뚫고 탈출에 성공함

비록 탈출은 했으나 수많은 사상자가 생기고 장비를 모두 잃어버린 중국군은 완편된 일본군 사단 하나와 마주치고 곧바로 근처 산 속으로 전력으로 탈출을 시도했음

하지만 일본군이 추격할거라는 생각과는 달리 그 일본군이 움직이지도 않음

중국군이 정찰대를 내보내 살펴보니, 그 일본군은 4사단이었고, 4사단은 중국군을 추격할 생각 없이 도로 옆에서 밥을 지어먹고 휴식을 취함

중국군은 그대로 4사단을 우회하여 탈출에 성공

 

 

이 사건 이후

'오사카의 일본군은 싸울 줄 모른다'와는 소문과 함께 중국군이 '오사카단'이라는 이야기만 들으면 사기가 급증해서 서로 4사단과 싸우려고 난리일 정도

 

일본군 수뇌부는 할수없이 4사단을 후방으로 빼려고 했지만,

11군 사령관 이나미 중장은 헛소문이라고 일갈하며 4사단을 주력으로 장사 전투에 동원함

초반엔 중국군의 후퇴로 전진했으나, 중국군의 반격을 맞자 4사단은 그대로 와해되며 후퇴하기 시작

 

중국군은 유일하게 4사단이 맞싸움이 가능한 부대라고 평가했음

 

 

이 전투 이후로 일본군의 그 어떤 누구도 4사단을 원하지 않아 할수없이 유일한 대본영 본토 직할부대로 편성하게 됨

 

태평양전쟁 발발 후 사방에서 일본군이 개박살나도 이 부대만큼은 격전지에서 사용되지 않고 후방에서 놀면서 대기,

1943년엔 최전선과 거리가 있는 태국으로 이동해서 경비업무를 보며 2년을 보내다가 종전을 맞음

종전 직후 항전하거나 반발하며 할복하던 다른 사단과는 달리 곧바로 미군에 협조하며 항복하고 순조롭게 귀국길에 오름

 

다른 전선에서 돌아오는 일본군들은 병색이 만연하고 메말랐으나 4사단 병사들만큼은 건강하고 혈색이 좋아서 본토 일본인들이 놀라게 했고

귀국 즉시 4사단의 장교와 병사들은 미군부대 앞에 노점상을 깔고 장사를 하기 시작함

 

 

 

 “오사카라는 지역이 원래 상인 마을이라 막부의 위엄도 두려워하지 않고 영주도 관여하지 않았던 독특한 삶의 전통을 가지고 있었고, 이러한 환경에서 자란 젊은이들을 갑자기 군대에 징집하여 국가를 위해, 혹은 천황을 위해 싸우고 죽어라 한다고 그들이 말을 들을 리가 없다” 라는 평가가 있음

 

다른 일본군 병사들이 서로 인사할 때 인사말로 "무운장구(武運長久)" 혹은 "구단판견(九段坂見..야스쿠니에서 다시 보자...그런 뜻)" 같은 말들을 주로 썼었던데 반해, 제 4사단 병사들의 평소 인사말은 "어신대절(御身大切..목숨 부지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이었다고

 

 

 

https://m.blog.daum.net/mybrokenwing/331

https://m.blog.daum.net/shanghaicrab/11558763

추천1 비추천0
URL 복사
댓글 0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

Total 1,230건 10 페이지
  • RSS
읽을거리 목록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추천 조회
1050 개소리잘함 쪽지보내기 마이페이지 아이디로 검색 06-19 1 334
1049 폴리시아 쪽지보내기 마이페이지 아이디로 검색 06-19 1 427
1048 귀큰놈들시발 쪽지보내기 마이페이지 아이디로 검색 06-19 1 367
1047 건들이 쪽지보내기 마이페이지 아이디로 검색 06-19 1 422
1046 개소리잘함 쪽지보내기 마이페이지 아이디로 검색 06-17 1 557
1045 진크화이트 쪽지보내기 마이페이지 아이디로 검색 06-17 1 416
1044 크롬 쪽지보내기 마이페이지 아이디로 검색 06-17 1 361
1043 귀큰놈들시발 쪽지보내기 마이페이지 아이디로 검색 06-17 1 334
1042 건들이 쪽지보내기 마이페이지 아이디로 검색 06-16 1 481
1041 개소리잘함 쪽지보내기 마이페이지 아이디로 검색 06-16 1 399
1040 개소리잘함 쪽지보내기 마이페이지 아이디로 검색 06-15 1 585
1039 개소리잘함 쪽지보내기 마이페이지 아이디로 검색 06-14 1 444
1038 귀큰놈들시발 쪽지보내기 마이페이지 아이디로 검색 06-14 1 523
1037 폴리시아 쪽지보내기 마이페이지 아이디로 검색 06-13 1 339
열람중 폴리시아 쪽지보내기 마이페이지 아이디로 검색 06-13 1 508
1035 개소리잘함 쪽지보내기 마이페이지 아이디로 검색 06-13 1 829
1034 진크화이트 쪽지보내기 마이페이지 아이디로 검색 06-13 1 589
1033 폴리시아 쪽지보내기 마이페이지 아이디로 검색 06-13 1 354
1032 개소리잘함 쪽지보내기 마이페이지 아이디로 검색 06-13 1 592
1031 개소리잘함 쪽지보내기 마이페이지 아이디로 검색 06-13 1 411

검색


회원로그인

회원가입

사이트 정보

회사명 : YEAH 커뮤니티 / 대표 : 이성재 / 개인정보관리책임자 : 이성재

Copyright © YE-AH.NET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