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서울 상공에서 에어쇼가 벌어진 이유 (장문주의) > 읽을거리/역사

본문 바로가기
사이트 내 전체검색

읽을거리

역사 오늘 서울 상공에서 에어쇼가 벌어진 이유 (장문주의)

페이지 정보

  • 목록

본문

1.png

 

 

 

 

 

서울에 사는 사람들은  오늘 비행기들이 굉음을 내는 소리를 들었을 거임.

 

공군 비행팀인 블랙이글스가 서울상공을 날아다닌 소리인데, 이 비행은 한국전쟁 때 벌어진 '장진호 전투'를 추모하기 위한 것이었음.

 

10월 26일은 1950년 한국전쟁 초반, 유엔군이 중공군과 처음으로 접촉한 날이기도 함.

 

 

그래서 이 글을 통해 장진호 전투가 뭔지 한번 설명 해봄.

 

 

 

 

 

 

장진호 (1).png

 

 

 

장진호 전투(Battle of Chosin Reservoir)

 

 

1950년 늦가을,

 

후방 패잔병 섬멸과 강계 공략을 위해 원산에 상륙한 유엔군은 함경도 남부에 위치한 '장진호수'까지 진격함. 그런데 이들을 상대하기 위해 30만 대군이 중공군이 포위공격을 해옴.

 

유엔군은 한반도 북부의 강추위와 중공군의 포위망을 뚫고 다시 흥남까지 복귀하기 위해 약 2달에 걸친 처절한 사투를 펼침.

 

이는 역사에 기록된 미군과 중공군의 첫번째 대규모 전면전이기도 함.

 

 

참고로 전투가 벌어졌던 곳의 이름은 장진(長津)호이지만, 당시 미군이 입수한 일제시대 지도에는 장진이라는 단어가 일본어 독음인 초신(ちょうしん)으로 표기되어 있었음. 

 

그래서 미국에서는 이 전투를 '초신 전투'로 표기함. (그래서 이 지명을 따온 타이콘데로가급 19번함의 이름도 초신임.)

 

 

 

 

 

 

 

장진호 (2).png

 

 

1950년 한반도의 겨울은 이례적으로 추웠는데, 그중에서도 혹한지였던 함경도는 영하 40도까지 내려갔음. 그리고 미군은 1941년 모스크바 공방전의 독일군과 똑같은 상황에 직면함. 이 강추위는 여태까지 단 한번도 극한지에서 싸워본 적이 없었던 미군에게 엄청난 충격이었음.

 

 

 

 

 

 

 

 

장진호 (3).png

 

 

하지만 쇼미더머니를 마구 쳐대서 엄청난 공중보급과 충분한 방한장비를 지급한 덕분에 부대 전체가 얼어죽는 상황만은 피함. (물론 그렇게 껴입어도 잠깐만 방심하면 얼어죽었을 정도로 추웠다고 함.)

 

 

 

 

 

 

 

 

 

 

d0ed7421596d615eb56ac62612974e66.jpg

 

 

 

당시 참전용사들의 회상으로는 

 

삽날이 부러질 정도로 땅이 꽝꽝 얼어서 TNT를 가져와서 참호를 파야 했고,

부상병들을 잠깐이라도 밖에 눕혀놓으면 백이면 백 동사했고, 

대신 부상당해도  잠깐만 생살을 드러내놓고 있으면 피부가 얼어붙어서 상처가 자연적으로 지혈이 됐고,

전차나 트럭은 1시간에 한번씩 예열을 하지 않으면 엔진이 죽어버렸고,

기관총은 총열교환 없이 몇백발을 쏴대도 절대 과열이 되지 않았고,

수통은 가득 채워놓으면 얼어서 찢어졌기 때문에 절반만 채웠고,

C레이션 같은 건 대충 데워먹다간 배탈나서 설사하니까 과자나 캔디 같은 것만 먹고 싸웠고, 

M1카빈, M3그리스건 같은 총들은 가스압이 절반 이하로 떨어져서 노리쇠 왕복이 되질 않아 쓸모가 없었고,

총알에 9발이나 피탄 당한 한 병사는 방한복을 너무 껴입어서 단 한발도 관통되지 않았음.

 

 

미군은 포위되서 후퇴하는 신세였지만 오히려 효율적인 공중지원과 미해병대 특유의 전투력으로 중공군을 차분하게 막아내고 오히려 더 큰 피해를 안겨줌. 여기서 싸웠던 중공군 부대들중 많은 수가 전멸판정을 받을 정도로 수가 줄어버림.

 

반대편인 평안도에서 미 육군 2사단과 미 1기병사단이 중공군의 포위전술에 휘말려 개박살난 것과는 정반대의 선전이었음.

 

하지만 사방팔방에서 다구리를 맞다보니 천하의 미해병대들도 버티지 못하고 쓰러져감. (ex: 대열 후미에서 적을 막아내며 후퇴하던 중에 같이 싸우던 동료가 어느순간 실종됨, 전우 뒤로 중공군이 몰래 습격하려는걸 목격했는데 총이 고장나서 못 구해주고 죽는걸 그대로 눈 뜨고 지켜 봄.)

 

 

이 전투에서 미군은 공식적으로 1천의 전사자와 4천의 실종자, 그리고 7천명의 동상환자가 발생함. (중공측 기록으로는 사상자 13,000명)

 

여기서 싸운 참전용사들은 훗날 극한의 환경에서 살아남았다는 뜻으로 초신 퓨(Chosin Few)라고 불림.

 

 

미국에서는 현재 '적의 포위와 가혹한 환경을 이겨내고 성공적으로 철수한 전투'로 평가하고 있고, 중국에게 있어서는 '세계최강 미군을 몰아낸 전투'로 기록하고 있음.

 

 

 

 

 

 

 

 

 

 

98db4c14a04601fc11517b7170c0dabe.jpg

 

 

이때 미해병대 1사단은 전사자들 시신을 고국으로 가져가지 못해서 함흥에 임시 매장하고 떠날 수 밖에 없었음. 

사단장이었던 올리버 스미스 소장은 묘지 앞에서 묵념을 하면서 "언젠가 반드시 돌아와서 데려가겠다." 라는 말을 남겼다고 함

 

 

 

 

 

추천1 비추천0
URL 복사
댓글 0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

Total 272건 11 페이지
  • RSS
읽을거리 목록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추천 조회
72 폴리시아 쪽지보내기 마이페이지 아이디로 검색 11-05 1 576
71 유니신느 쪽지보내기 마이페이지 아이디로 검색 11-04 1 606
70 개소리잘함 쪽지보내기 마이페이지 아이디로 검색 11-04 1 432
69 개소리잘함 쪽지보내기 마이페이지 아이디로 검색 11-04 1 2561
68 유니신느 쪽지보내기 마이페이지 아이디로 검색 11-03 1 582
67 개소리잘함 쪽지보내기 마이페이지 아이디로 검색 11-02 1 710
66 귀큰놈들시발 쪽지보내기 마이페이지 아이디로 검색 11-01 1 766
65 개소리잘함 쪽지보내기 마이페이지 아이디로 검색 11-01 1 591
64 진크화이트 쪽지보내기 마이페이지 아이디로 검색 11-01 1 1236
63 귀큰놈들시발 쪽지보내기 마이페이지 아이디로 검색 10-30 1 653
62 크롬 쪽지보내기 마이페이지 아이디로 검색 10-29 1 693
열람중 개소리잘함 쪽지보내기 마이페이지 아이디로 검색 10-29 1 692
60 개소리잘함 쪽지보내기 마이페이지 아이디로 검색 10-27 1 726
59 귀큰놈들시발 쪽지보내기 마이페이지 아이디로 검색 10-27 1 1015
58 유니신느 쪽지보내기 마이페이지 아이디로 검색 10-26 1 657
57 폴리시아 쪽지보내기 마이페이지 아이디로 검색 10-26 1 639
56 개소리잘함 쪽지보내기 마이페이지 아이디로 검색 10-25 1 716
55 귀큰놈들시발 쪽지보내기 마이페이지 아이디로 검색 10-25 1 924
54 폴리시아 쪽지보내기 마이페이지 아이디로 검색 10-25 1 854
53 폴리시아 쪽지보내기 마이페이지 아이디로 검색 10-24 1 877

검색


회원로그인

회원가입

사이트 정보

회사명 : YEAH 커뮤니티 / 대표 : 이성재 / 개인정보관리책임자 : 이성재

Copyright © YE-AH.NET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