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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는얘기 이디야 잔혹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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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나는 매일 퇴근을 하고 카페로 향한다. 글을 쓰고, 수의학 공부를 조금 하다가 영어공부를 한다. 이디야의 점장의 입장에서 아주 기분 나쁜 손님일것이다. 7시 반쯤 와서는 11시가 다되어서야 카페 문을 향한다. 언제나 커피는 가장 싼 아이스 아메리카노만 시켜대니 악질도 이런 악질이 없다. 다행히 이곳 카페의 저녁타임은 아르바이트생이 담당한다. 눈치가 안 보이는 것은 아니지만 그럭저럭 버틸만할 정도로 눈칫밥을 먹고 있다.

 

키가 큰 여자 아르바이트생 A, 키가 작은 여자 아르바이트생 B, 잘생긴 남자 아르바이트생 C가 돌아가면서 가게를 맡는다. B의 경우에는 주말에만 볼 수 있었기에 자주 보지는 못하고(주말에는 좀 더 비싼 카페에 간다) 거진 A와 C를 마주치게 된다. 그날은 A가 카운터를 맡고 있었다. 나는 자연스럽게 카드를 건네며 "아이스 아메리카노 하나요"를 뻔뻔하게 외쳐대고 더욱 뻔뻔하게 "적립해주세요"를 외친다. 나이가 먹을 수록 낮짝만 두꺼워짐을 느낀다.

 

한 무리의 남자들이 들어왔다. 30대 후반 혹은 40대 초반쯤으로 보이는, 꽤나 덩치가 있는 남자들이었다. 공교롭게도 그들이 나의 앞쪽 테이블에 앉은 터라 그들의 이야기를 들을 수가 있었다. 아니, 사실 카페에 있는 모든 사람이 그들의 이야기를 들었을 것이다. 카페라는 사실을 감안하고서라도 격양되고 큰 목소리로 대화하고 있었다. 본격적인 이야기에 들어가기에 앞서, 사실 내가 사는 동네는 꽤나 부자동네다. 나는 부자가 아니고 직장이 부자동네에 있을 뿐이지만 말이다. 그들도 나처럼 부자는 아닌데 이 동네에 사는 모양이었다. 자신의 아이들이 학교 친구들에게 무시를 당한다며 분통을 터뜨렸다. 따돌림을 당하다가 학교폭력을 당하기도 했다는 아버지의 얼굴이 슬퍼 보였다.

 

2.

흥미로운 이야기이긴 했으나 남 이야기 엿듣는것이 카페에 온 목적은 아니었다. 이어폰을 끼고 다시 공부에 집중하기 시작했다. 한 20분쯤 지났을까 갑자기 큰 소리가 들려왔다. 놀라서 주변을 둘러보니 아까 전까지 홈스쿨링을 해야 될지도 모른다던, 전학을 고민 중이라던 아이의 아버지가 시뻘게진 얼굴로 아르바이트생에게 화를 내고 있었다. 아르바이트생 A였다. 왜 이렇게 자신의 커피가 나오지 않느냐며 삿대질과 함께 고성을 지르고 있었고 아르바이트생 A는 큰 키를 반으로 접어가며 연신 죄송하다고 이야기하고 있었다. 개인적으로는 난감하다고 느껴지는 장면이었다.

 

3.

누군가가 자신의 아이를 괴롭혀서 그렇게나 화를 내던 사람이 다시 누군가의 아이를 괴롭히고 있었다. 그 후로는 정말 5분도 안돼서 그들의 커피가 나왔다. 아르바이트생 A는 커피를 내려놓으면서도 다시 "죄송합니다"라고 말하면서 고개를 숙였다. 아르바이트생의 눈에는 눈물이 고여있었다. 카운터로 들어간 그녀를 힐끗 바라보았다. 고개를 들어 올리고 연신 손부채를 부치고 있었다. 무용한 노력처럼 보였다. 말라가는 눈물보다 더 많은 눈물이 흘러나왔다.

 

그는 아마 자신의 아이를 괴롭힌 아이에게는 지금처럼 분노를 표출하지 못했을 것이다. 소리를 지르려는 찰나에 그 부모가 가진 재력, 권력, 인맥에 주눅 들었을 것이다. 그가 할 수 있는 것이라고는 3200원짜리 커피를 세잔 시켜놓고 친구들 앞에서나 넋두리를 할 뿐이다. 그런 그가 파란색 옷을 입은 이디야 아르바이트생에게는 마음껏 분노를 뿜어낸다. 상대방의 배경이 별 볼 일 없어서 고성을 내지른 그는, 자신의 아이가 별 볼 일 없는 부모를 가졌다는 이유로 학교폭력을 당했다고 하더라도 화를 낼 자격이 있는가. 나는 의문이다.

 

4.

만약 이 장면이 내가 쓰는 소설의 한장면이라면 이 사건을 필연적인 다른 사건으로 연결시킬것이다. 이를테면 알바생 A는 집으로 돌아가서 초등학생 동생의 뺨을 때리면서 화풀이를 하고 그 동생은 학교에서 사내의 아이를 흠씬 두들겨 패는 것이다. 꼬리에 꼬리를 무는 폭력성은 어느순간 펑 터지게되고 그럴듯한 허무함과 그럴듯한 교휸을 남긴채 이야기의 끝을 내면 수작 소리는 못들어도 평작 소리는 들을 수 있겠다 싶었다.

 

하지만 현실과 소설은 고양이와 샤워만큼이나 그 간극이 크다. 아마도 사내는 끊임없이 갑질을 할것이고 사내의 아이는 어지간해서는 괴롭힘의 굴레를 빠져나오지 못할것이다. 이디야 알바생은 수없이 많은 무례한 사람들에게 무시를 당하게 될것이다. 소설과 달리, 현실의 폭력은 순환하지 않고 오로지 더 약한 쪽을 향해서만 빨려들어갈 뿐이다.

 

5.

꽤나 오랜시간 카페에 앉아있었는지 어깨가 뻑쩍지근하다하다. 사내들은 집으로 돌아간지 오래고, A는 다시 멍하니 카운터를 보고있다. 나는 쟁반과 함께 커피를 반납하고 이 지독히 현실적인 공간을 빠져나왔다. 물론 문 밖이라고 한들 크게 다르지는 않을테지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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