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 6.25전쟁 개전 당시 남북한 전력 비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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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국군
육군
보병 병력
8개 사단 편제 9만명이 조금 넘는 수준
육군사관학교 1~10기 장교들과 일본 학병,육사,만주군 출신 장교및 광복군,중국군 출신의 군경험자들로 구성
보병장비
일본군이 남기고 간 99식 소총
포병 전력
M3 105mm 경곡사포
57mm 대전차포
M18 무반동총
기갑 전력
탱크,자주포 x
M8 그레이하운드 (27대)
M3 하프트랙 (20여대)
공군
전투기.폭격기,공격기 x
사진 순서대로 L-4, L-5 연락기 T-6 텍산 연습기 (총합 22기)
개전 당시 육군의 열악한 사정 때문에 가려져서 그렇지 사실상 공군은 없다고 무방한 상태
해군
구잠함급 백두산함
대한민국 해군 최초의 전투함
YMS급 소해정 (19척)
LST 문산 (1척)
PG-313 충무공함 (1척)
장비 훈련상황 무도 열악 그 자체 전차 전투기는 생산은 커녕 원조도 못받았음
수차례 대한민국 정부가 미국에게 원조를 요청했지만 미국에선 영 시원찮은 반응으로 원조 우선순위에 밀렸던 상황
그래도 수차례 북한의 공격에 대비하기 위한 방어용 무기들을 요구 하면서 미 국무부에서 방위할 수 있는 무기들을 원조 하도록 검토 했지만
원조 받기 전에 전쟁이 터져버리는 바람에 소용이 없게 되버림
북한군
육군
보병 병력
개전 시점 18만명으로 추산
보병 장비
모신나강
ppsh-41
포병 전력
122mm M-30 견인곡사포
76mm ZiS-3 사단포
막강한 전력으로 이미 소련군을 통해 사단급의 훈련까지 끝낸 상황
기갑전력
T-34 (242대)
SU-76M (150대 이상)
BA-64B (54대)
6.25 개전 당시 기준 아시아 최강의 기갑전력이라 평가 받음
중국은 국공내전이 끝난뒤여서 일본제 구식 노획전차,국민당 정부의 무기대여법으로 인해 대여 받았다 노획된 소수의 미국전차 뿐이였고
일본은 패망하고 자위대 생기기 이전 주일미군 M24 채피가 전부
공군
Yak-9 (150대)
Il-10 (70대)
해군
사진 자료는 거의 못구하고 기록만 몇개 존재 하는데
1천톤급 무장수송선 2척, 소형 발동선, 4~50톤급 발동선과 상륙정 70척 정도라 함
그외에도 북한군은 국민들에게 애국미라는 이름으로 쌀을 거둬들이고 루마니아로부터 10만톤의 유류 구입및
연간 12만 리터의 정유능력을 가진 정유공장을 지으며 전쟁 준비에 박차를 가함
그리고 김일성은 단 2개월 만인 8월 15일 광복절에 맞춰 남북통일 하겠다는 망상을 하며
1950년 6월 25일 일요일 새벽 3시 김일성은 내각 회의를 소집 남한측이 북침을 거짓주장 하며 헌법에 따르면 오직 내각이 전쟁과 평화의 문제를 결정할 수 있으니 빨리 남측에 대한 역습을 가해야 한다고 주장
김일성은 총사령관 명의로 "지금 전쟁이냐 평화냐는 내각에서 결정해야 할 것이다. 나는 전쟁을 시작할 것을 명령한다. 모두 동의하는가?"라고 물었다. 이에 내각이 동의하면서 북한의 정권은 최종적으로 남침을 확정했고
불과 한시간 후인 새벽 4시, "폭풍" 이라는 작전명 하에 북한은 전면적인 남한 침공을 개시함
개전 하고 8월까지 낙동강까지 밀리며 최후의 방어선인 낙동강 방어선이 세워지며
수많은 국군 장병 분들이 방어선을 지켜내기 위해 혼신의 노력을 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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