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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고향에 돌아가 군인들에게 맞아죽은 최정예 남파간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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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번 시간에 북한판 실미도 사건에 대해 말씀드렸는데, 오늘은 또 한 개 중대가 보복으로 모두 학살된 사건, 북한에서 소문이 자자했던 사건을 말씀드리겠습니다.

제가 북에서 대학에 다닐 때 들었던 사건인데, 김일성대에는 고위 간부 자식들이 많아서 거기서 도는 이야기들은 대개 신빙성이 있습니다. 제가 강릉잠수함 사건 벌어져 북한 승조원들이 자살을 선택했던 이야기도 북한 사람들은 다 모를 때 김일성대에선 좌초 바로 이틀 뒤에 김일성대에선 소문이 돌아서 수십 명이 자살을 했다는 얘기 들었을 정도였습니다.

오늘 이야기도 지난번 중대 사살 사건 증언한 그 고위 탈북자가 제가 북에 있을 때 들었던 것과 똑같은 내용을 증언해 몇 년 전에 한 언론사에 관련 글도 썼습니다. 그래도 많은 분들이 모르실거니 말씀드리겠습니다.

이 사건은 김일성이 사망해서 유명한 평안북도 향산군에서 1990년 발생한 사건입니다. 이곳에 대남공작원이 찾아왔습니다. 우리 입장에선 간첩이죠.

이 간첩이 1980년대 20대 초반부터 남파돼 한국에서 대학생으로 위장해 활동했다고 합니다. 그때 한국의 대학가에 위수김동 뭐 이러면서 분위기가 북한 찬양하는 쪽으로 흘렀는데, 여기에 젊은 북한 간첩들도 대학생으로 가장해 침투한 뒤 이런 흐름 주도했다는 뜻이겠죠.

이 간첩이 1990년 가을에 사업총화 보고도 하고 활동지침과 자금을 받아가기 위하여 은밀히 평양으로 들어왔습니다. 그런데 그 시기 고향인 향산군에 살고 있던 아버지가 칠순 잔치를 하게 됐는데, 이 간첩은 차를 타고 갔다 오라는 중앙당 본부의 권유를 거부하고 호위병 두 명만 데리고 갔답니다.

이유는 가족이나 주위 사람들이 군대에 간 것으로 알고 있기 때문에 조국 산천을 유람하면서 조용히 다녀오겠다는 것이고, 워낙 최정예 훈련 받았으니 무서울 것도 없죠. 고향 가까이까지 가서 이 공작원은 집에 조용히 혼자 들어가겠다면서 호위병도 좀 있다가 오라고 읍에 남겨두고 자기가 어렸을 때 뛰어놀던 농촌길 따라 걸어갔다고 합니다.

그런데 길에서 군인 6명이 이 사람 혼자인 것을 보고 말을 건거죠. “담배 한대 좀 주세요” 이러고 수작 걸었는데 이 공작원이야 북한의 사정 잘 모르니까, 인민군대를 보니 반갑다고 하면서 가방을 열어 고급담배 한 갑씩을 주었다고 합니다. 아버지 칠갑에 가니 가방에 좋은 술, 담배 가득 채워 있었습니다.

군인들이 딱 보니 옷도 비싸게 입고, 가방도 비싸고, 가방 지퍼를 여니 고급담배, 고급술이 가득 차 있으니 이게 뭐냐 싶었죠.

그래서 “야, 그 술과 담배 다 꺼내” 이러고 강도로 돌변했습니다. 공작원은 “아버지 칠순 잔치 때문에 가는데, 이걸 줄 수는 없고, 내일 저녁 저기가 우리 집인데 찾아오면 잔치하고 남은 걸 내가 대접하겠다”며 집도 알려주었습니다.

군인들 입장에서 뭔 이런 만만하고 어처구니없는 놈이 있냐 싶었겠죠. “야, 수작 부리지 말고 지금 내놔” 이러고 가방을 통째로 뺏으려 덤볐습니다. 공작원이 처음에는 그냥 순수한 마음으로 대상했는데, 군인들이 강도짓을 하고 주먹 휘두르니 그때 배운 게 나왔죠. 6명 모두 가볍게 눕히고 집에 갔습니다.

6명이 중대에 얻어터지고 가니, 중대장이 “어떤 새끼가 이랬어” 하고 펄펄 뛰었습니다. 군인들이 저기 어디 간다는 젊은 남자가 우릴 이렇게 만들었다고 말했죠. 그러자 중대장이 “이런 머저리 새끼들” 하고는 부소대장 한 명 시켜 “조선인민군대 본때를 보여주고 오라”고 시켰습니다.

부소대장이 싸움 좀 할 줄 아는 부하 한 30명 뽑아서 공작원 집에 쳐들어갔습니다. 이들이 갔을 때 공작원은 부모와 오랜만에 만나 회포를 나누고 있던 중이었는데, 여기에 군인 30명이 쳐들어온 겁니다. 와서 그냥 막 부수고 행패 부리고 부모에게 손찌검까지 하니 처음에 말리던 공작원이 열 받아 드디어 싸움이 벌어졌습니다. 그런데 워낙 잘 훈련돼서 군인들이 30명으로도 밀렸다고 합니다.

수십 명이 맞아 쓰러지니 남은 군인들이 눈이 돌아갔죠. 도저히 안 되겠으니 이중 한 명이 그 집에 있던 나무 패던 도끼를 뽑아들고 뒤로 돌아가 머리를 내리 찍었다고 합니다. 그리곤 다 달아났습니다.

그 공작원이 죽기 전에 “적후에서도 죽지 않았던 내가 고향에 와서 억울하게 죽는다”는 말을 남겼다고 합니다. 나중에 호위병들이 오니 그런 상황이 벌어진 것이죠. 즉각 이 사건이 김정일에게까지 보고가 들어갔습니다.

화가 난 김정일은 “인민군대 1개 사단을 잃은 것보다 더 큰 손실을 당했다”며 “공작원을 죽인 그 중대를 한 명도 남김없이 몰살시키라”고 지시했다고 합니다.

그날 새벽 4시쯤 완전무장을 한 대남공작원 훈련생들이 중대에 나타났습니다. 최고사령관 명령으로 중대를 모두 마당에 모이라고 하고선 싸움에 가담하지 않은 병사들까지 모두 죽였고, 이들의 고향엔 전사통지서만 보냈다고 고위 탈북자는 증언했습니다.

그런데 제가 평양에서 들었던 내용은 좀 다릅니다. 중대 집합 시킨 것까지 맞는데, 제일 먼저 군관들과 싸움에 가담한 군인들 불러낸 뒤 총으로 머리를 쏴서 죽였다는 것까지 들었습니다.

또 공작원 관리를 잘하지 못한 중앙당 담당 부서 성원들과 호위병들, 몰살당한 중대 상급 군관들은 출당, 파면시켜 비밀보장을 위해 18호 정치범수용소에 보냈다고 합니다. 그 정도로 김정일이 치를 떨 정도면 엄청 대단한 업적을 세운 간첩이 아닐까 싶은데, 제가 듣기도 엄청 큰 거물이었다고 했습니다.

우리 입장에선 엄청 큰 골칫거리를 북한군이 처리해준 셈이되겠네요. 이 이야기는 제가 보진 못해도 아는 탈북민이 꽤 많은 것으로 보아 실제 있었던 이야기가 확실해 보입니다. 지금까지 시청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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