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나후진 전장식 소총 vs 독일MG-42 > 읽을거리/밀리터리

본문 바로가기
사이트 내 전체검색

읽을거리

밀리터리 존나후진 전장식 소총 vs 독일MG-42

페이지 정보

  • 목록

본문

 

2015122516351225698.jpg

남북전쟁 당시 돌담 전투라고 불리는 프레데릭스 버그 전투에서 

 

남군은 동물의 침입을 막기위해 세운 허술하고 낮은 돌담 뒤에 포진해있었다.

 

 

우리나라 시골에서도 흔히 볼수 있을 정도의 조악한 돌담에 불과한 이곳을 향해

 

북군 6개 사단 16개 여단이 차례로 전진하다가 단 하루사이에 8000명이 갈려나갔다.

 

학살의 대명사인 나치의 가스실도 이렇게 신속하게 사람의 목숨을 빼앗지는 못했다.

 

 

 

 

 

 

 

 

 

download.jpg

 

 

남북전쟁당시 전사자의 수는 60~70만명이였는데,

 

2차 세계대전과 비교하면 미군측 희생자는 29만명이었다.

 

이를 시대상 인구비율로 따져본다면 남북전쟁의 전사자수는 그 10배인 260만명에 달한다.

 

 

 

 

 

 

 

unnamed.jpg

 

2차 세계대전은 1차세계대전에서 조차 볼수 없었던 

 

그야말로 오직 살상만을 위한 희대의 살인병기가 전세계에서 쏟아져나온 시기였다.

 

남북전쟁시기와 2차대전 당시 사용했던 무기의 수준이 차원이 다름에도 

 

대체 2차대전에 비해 남북전쟁 당시의 희생자수가 이렇게 높게 나온것일까.

 

 

 

 

 

 

 

download.jpg

 

남북전쟁 때 사용된 소총은 종이로 밀봉한 화약을 찢어 총구에 털어 넣은 뒤, 

 

동글동글한 탄알을 넣고 꼬질대로 여러번 쑤셔넣어 발사하는 구식소총이었다.

 

두말 할 필요도 없이 연사속도는 끔찍한 수준으로 훈련된 사수도 실전에서 분당 두발을 쏘면 잘쏜것이었다.

 

 

전쟁 후반에 연발식 카빈소총과 기관총이 등장했지만 실전에서의 활약은 미미한 수준이었고,

 

당시로서 최고의 무기는 대포였다.

 

하지만 이 시기의 대포라고 해봤자 2차대전 대포에 비하면 성능이 절반에도 미치지 못하는 똥포였다.

 

 

 

 

 

 

 

 

 

img.png

 

1차세계대전이 지나고 또 다시 찾아온 암울한 2차대전 시기

 

독일의 명품기관총 MG-42는 1분에 1200발을 정확한 목표로 분사했다.

 

남북 전쟁 당시 보병 600명의 화력에 해당하는 화력을 1분만에 투사하는 꼴이다.

 

그렇다면 남북전쟁에서는 조악한 전장식 소총과 똥포로 어떻게 10배에 달하는 살상률을 기록한것인가.

 

 

 

 

 

 

 

 

 

img.jpg

 

영화 게티스버그를 보면 전진하던 피켓 사단의 병사들이 평범한 목장 울타리에서 작전이 지연되는 장면이 나온다.

 

남군이 몰리자 기회를 잡은 북군은 이 울타리를 향해 사정없이 포탄공격을 퍼붓는다.

 

그런데 울타리를 넘은 남군 병사들은 바로 북군 포대로 돌격하지 않고, 멈춰 서서 뒤에서 넘어 오는 병사들을 기다렸다가

 

마치 학교 운동장에서처럼 좌우로 정렬하며 오와 열을 맞춘다.

 

격렬한 포격속에서 이런 일이 어떻게 가능했던걸까.

 

 

 

 

 

download.jpg

 

남북전쟁은 인간의 용기와 무지를 극한까지 시험했던 전쟁이었다.

 

10분이면 1개 연대, 1개 여단이 증발하는 포연의 지옥속으로, 오와 열을 맞춰 당당하게 걸어 들어갔다.

 

이런 전술은 반세기전 전쟁영웅 나폴레옹이 사용했던 전술이었다.

 

남북전쟁 직전의 미국과 유럽은 나폴레옹을 얼마나 존경했는지, 사관학교 떄 별명이 '리틀 나폴레옹'이었던 장군도 여럿 존재했다.

 

 

 

 

 

 

images.jpg

나폴레옹의 전술대형은 이렇다.

 

1. 대포로 집중사격을 하고, 보병이 열을 지어 행진

2. 양측 군대가 50미터 이내로 근접하면 소총으로 사격전을 벌인다.

3. 서로 2, 3열의 일제사격을 서로 주고받는다

4. 백병전으로 마무리

 

이 전술의 핵심은 대형유지였다. 당시 소총은 위력이 허접해 유효 사거리가 25미터에 불과했다.

 

그 거리 밖에서 목표를 명중시키면 기적이었다.

 

총과 대포의 살상력이 떨어졌기 때문에 최종 승부는 백병전으로 결정 됐는데, 백병전은 집단전투이므로 대형의 유지가 필수적이었던 것이다.

 

 

 

unnamed.jpg

 

나폴레옹이 사망한 해가 1821년이다. 이후 50년 사이에 총과 대포의 기술은 비약적 성장을 이루었다.

 

소총이 전장식이라는건 같았지만 특수강의 개발로 총열과 포신의 강도가 몰라보게 좋아졌다.

 

그덕에 총기기술자들은 오랜 염원이던 강선을 적용할수 있게 됐다.

 

 

 

 

 

 

unnamed.jpg

 

강선의 도입으로 총기와 대포의 사거리와 정확도가 크게 증가했다.

 

강선이 없는 총에서 발사된 총알은 총열을 지날 때, 뒤에서 미는 화약의 폭발력에 의해 통통 튀듯이 진동하면서 밀려나오는데,

 

이 때문에 총구에서 사출될때 엉뚱한 방향으로 날아간다. 총구를 벗어난 뒤에도 회전이없어 궤도를 유지하지  못해

 

공기저항에의해 이리저리 흔들리므로 명중률이 형편없었다.

 

그래서 나폴레옹전쟁에서는 25미터 앞에서 병사들이 마주보고 서서 사격을 하는것이 가능했던것이다.

 

하지만 강선의 도입으로 총의 사거리가 5배이상 늘었다.

 

살상력도 늘었고, 탄도만 정확히 계산해 쏘면 목표한곳으로 정확하게 날아갔다.

 

 

 

 

 

 

 

download.jpg

나폴레옹 전쟁 당시 돌진중 총기와 대포에 의한 살상률은 잘 쳐줘야 20%정도로

 

살상률이 5배 늘었다고 계산하면 총대포의 의한 살상률은 최대 100%까지도 가능해진다.

 

그리고 이러한 우려는 남북전쟁때 실제로 현실화 되어버렸다.

 

1개 연대 2,500명이 5분만에 전멸했으니까 말이다.

 

기술의 발전에도 50년전 전술을 고집했던것이 이 대량학살극의 원인이었다.

 

 

 

unnamed.jpg

이쯤에서 우리는 궁금해진다. 전쟁이 터지기 전 무기와 전술의 불일치를 몰랐다손 치더라도

 

전쟁이 6년이나 지속되었는데 그동안 장군들은 왜 이런 죽음의 대형을 고집했던건지 말이다.

 

현대의 병사들이 배우는 기초중의 기초인 각개전투를 왜 도입하지 않았느냐는것이다.

 

 

사실 생각하지 못한 것이 아니라 할수가 없었다.

 

전쟁과 경영에서 개혁을 강조하는것은 개혁이 깨달음만으로 할수있는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새로운 전술을 고안했더라도 그것을 실전에서 사용하려면 1년 꼬박 연구하고 훈련해야한다.

 

전쟁이 터진 이후에는 연구화 훈련을 시킬 시간이 없다.

 

 

 

사실, 남북전쟁이 끝난 뒤에 벌어진 보불 전쟁에서 병사들에게 각개전투를 시킨 적이 있다.

 

그런데 밀집대형에서는 총포의 지옥속으로 꿋꿋하게 걸어들어가던 병사들이 대형을 해체하자

 

밭두렁에 머리를 박고 공포에 겁에 질려 꼼짝도 하지 않았다.

 

 

소대장이 다가가 위협하고 칼로 찌르고 즉결사형을 시켜도 도무지 명령을 따르지 않았다.

 

머리를 들고 나가면 즉결처형을 당하는것보다 뒤질 확률이 훨씬 높았기 때문이다.

 

 

밀집대형에서 산개대형으로의 전환은 깨달음이나 훈련으로도 안되었던것이다.

 

군대의 구조, 목적, 사회의 운영 방식 전체가 바뀌어야 했다.

 

이전처럼 귀족 출신 장교가 명령하고 하층민은 병사가 되어 복종하는 구조로는 

 

장교가 보이지 않는곳에서도 병사들이 스스로가 열심히 싸우게 할 수는 없었던것이다.

 

 

 

 

 

NISI20140312_0009457227_web.jpg

 

 

그들을 싸우게 하려면 전우애가 필요했고

 

 

1264594650588A7C28.jpg

 

 

장교와 병사는 삶을 공유하는 친구가 되야했다.

 

 

 

 

 

남북전쟁 이전으로 돌아가 소총에 강선이 들어갔으니 전술을 바꾸고, 군대를 바꾸고

 

신분제도를 타파해야하고, 국민의 권리를 바꿔야한다고 주장한다면

 

그 누가 이 말을 듣겠는가?

 

 

 

 

눈에 보이는 문제를 고치는건 쉽지만

 

눈에 보이지않은 문제는 동의를 구하는것조차 어렵다.

 

아직 발생하지도 않은 일을 대비해 익숙한 시스템을 바꾸고

 

개혁의 고통과 피로를 감내하라고 하면 불만이 솟구친다.

 

한국병사들이 전부 자기때가 과도기였다고 주장하는것처럼 말이다.

 

이렇기에 개혁란것이 어려운것이다.

추천1 비추천0
URL 복사
댓글 0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

Total 128건 3 페이지
  • RSS
읽을거리 목록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추천 조회
88 크롬 쪽지보내기 마이페이지 아이디로 검색 03-28 1 1185
87 진크화이트 쪽지보내기 마이페이지 아이디로 검색 03-24 1 653
86 귀큰놈들시발 쪽지보내기 마이페이지 아이디로 검색 03-23 1 679
85 진크화이트 쪽지보내기 마이페이지 아이디로 검색 03-12 1 714
84 건들이 쪽지보내기 마이페이지 아이디로 검색 03-12 1 740
83 크롬 쪽지보내기 마이페이지 아이디로 검색 03-09 1 1021
82 개소리잘함 쪽지보내기 마이페이지 아이디로 검색 03-08 1 1003
81 유니신느 쪽지보내기 마이페이지 아이디로 검색 02-15 1 742
80 폴리시아 쪽지보내기 마이페이지 아이디로 검색 02-15 1 694
79 개소리잘함 쪽지보내기 마이페이지 아이디로 검색 02-15 1 2349
78 건들이 쪽지보내기 마이페이지 아이디로 검색 02-13 1 688
77 유니신느 쪽지보내기 마이페이지 아이디로 검색 02-12 1 906
76 귀큰놈들시발 쪽지보내기 마이페이지 아이디로 검색 02-09 1 964
75 건들이 쪽지보내기 마이페이지 아이디로 검색 02-04 1 639
74 건들이 쪽지보내기 마이페이지 아이디로 검색 01-29 1 747
73 크롬 쪽지보내기 마이페이지 아이디로 검색 01-28 1 746
열람중 폴리시아 쪽지보내기 마이페이지 아이디로 검색 01-28 1 923
71 진크화이트 쪽지보내기 마이페이지 아이디로 검색 01-27 1 615
70 폴리시아 쪽지보내기 마이페이지 아이디로 검색 01-25 1 575
69 개소리잘함 쪽지보내기 마이페이지 아이디로 검색 01-12 1 1209

검색


회원로그인

회원가입

사이트 정보

회사명 : YEAH 커뮤니티 / 대표 : 이성재 / 개인정보관리책임자 : 이성재

Copyright © YE-AH.NET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