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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한반도 역사중 외국 공주가 시집왔던 사례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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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국대장공주 

 

(몽골 쿠빌라이칸의 딸, 고려 충렬왕의 왕비)

 

 

 

부마국이었던 고려에 원나라 공주들이 여럿 시집왔지만 진짜 '황제의 딸'이 온건 한반도 역사상 이 사람이 유일했다고 함

 

그래서인지 시건방과 오만방자한 안하무인이 하늘을 찔렀고 남편인 충렬왕에게도 마치 아랫사람 부리듯 대했다고 함

 

 

심지어는 함께 천효사에 행차했을때 본인에게 시종을 적게 붙여 자신의 대접을 소홀히 한다며 남편 충렬왕을 지팡이로 구타함. 충렬왕이 싹싹 빌어서 겨우 화가 가라앉아 천효사로 들어가는데 또 충렬왕이 자신을 기다리지 않고 먼저 들어갔다며 또 욕을 하며 때림

 

 

하지만 충렬왕이 당한 수모는 충렬왕의 본처였던 정화궁주에 비하면 약과 수준인데 이 사람은 황태자비 시절부터 충렬왕과 함께 살았던 조강지처였지만 제국대장공주가 시집오면서 바로 세컨드로 서열이 밀려버림. 제국대장공주는 정화궁주를 마치 시녀처럼 부리며 짓밟으려 들었는데 연회 자리에서 충렬왕이 두 아내의 자리를 같은 높이로 마련하자 제국대장공주는 격분해서 연회 자리를 다 엎어버린 일화가 유명함.

 

 

결국 정화궁주가 한단계 낮은 자리로 옮기며 마무리되는듯 했지만 기어코 정화궁주를 본인 앞에서 무릎을 꿇리고는 자기에게 술을 바치게 함. 그 모습이 안타까웠는지 충렬왕이 힐끗 쳐다보자

 

'왜 그런 눈으로 쳐다보냐? 불만있냐?며

 

다시 충렬왕에게 성질을 부려서 결국 연회는 난장판이 된채로 파함. 자식도 정화궁주가 이미 충렬왕과의 사이에 1남 2녀로 왕자까지 있었지만 당연히 후계자 자리까지 제국대장공주의 아들이 빼앗아가버림

 

 

또한 원나라가 고려에 풀어놓은 다루가치들이 '정화궁주가 자신의 아들을 후계자로 세우기 위해 저주굿을 한다'고 모함하자 그 즉시 정화공주를 당장 가두고 심문하기도 했음. 정화궁주도 나름 20대 왕 신종의 증손녀라는 막강한 신분임에도 상국(上國)의 태도로 고려를 대하던 원나라의 기세인지라 어쩔 수 없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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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국공주 (원나라 위왕의 딸, 고려 공민왕의 왕비)

 

 

(노국)공주가 죽은 지 8년 뒤 어느 날.

 

공원왕후: "어찌하여 비빈들을 가까이하지 않습니까?"

공민왕: "공주만한 자가 없습니다."라고 하며 눈물을 흘렸다.

공원왕후: "한 번 죽는 것은 당연한 이치입니다. 왕 또한 결국은 면하지 못할 것이니, 어찌하여 심히 슬퍼하십니까. 사람들의 웃음거리가 될까 두려우니, 삼가 다시는 그렇게 하지 마십시오."

 

ㅡ 《고려사절요 29권》, 1373년(공민왕 22년) 3월

 

 

 

 

이름은 보르지긴 부다시리(ᠪᠣᠷᠵᠢᠭᠢᠨ ᠪᠦᠳᠬᠠᠱᠢᠷᠢ, Borjigin Budashiri). 공민왕이 '아름다운 보배'라는 뜻의 '왕가진(王佳珍)'이라는 고려식 이름을 직접 지어주기도 했다. 외국인 왕비, 그것도 적국 공주 출신의 왕비였던 이가 후대의 사람들에게 사랑받는 특이한 케이스. 

 

 

공민왕의 개혁정치나 반원정책을 아낌없이 서포트해주어 그야말로 공민왕의 정치적 동반자나 다름없었다. 노국공주는 엄연한 원나라의 공주이기 때문에 원나라를 등에 업고 있던 反 공민왕 세력들은 서열상 자신들보다 높고 명분과 권위도 가지고 있는 그녀가 나서면 어찌 할 방도가 없었다.

 

 

노국공주 본인은 정치에 직접 나서지 않았지만, 앞서 말한 그녀의 입지 때문에 그 존재만으로도 공민왕의 정치적 보호막이 되어 주었고, 이런 자신의 입장을 남편의 개혁정책을 위해 적극 이용했다. 이런 까닭에 원나라를 오랑캐 취급한 조선왕조 개국 세력인 신진사대부들조차 그녀를 인정했고, 실제로 조선 종묘에 있는 공민왕의 사당에는 노국공주가 같이 모셔져 있다. 자신의 고국과 맞섰던 남편 공민왕을 지키기 위해 할 수 있는것은 다 했기 때문.

 

 

둘 사이에 첫 아이를 가졌지만 결국 난산으로 사망한다. 공민왕이 얼마나 절실하게 공주의 순산을 바랐는지 사형수를 제외한 나머지 죄수들을 사면하고, 공주가 위독해지자 산천과 사찰에 기원을 드리도록 했으며 나중에는 사형수까지 모두 사면했지만 끝끝내 아이도 공주도 모두 숨을 거두고 말았다.

 

 

왕은 공주가 죽은 뒤에도 그녀의 초상화를 걸어 놓고 식사를 차렸으며, 공주가 살아 있을 적과 다름 없이 대화를 나누었다. 

그야말로 지고(至高)의 사랑. 

 

 

적국 간의 정략결혼으로 맺어진 사이인데도 불구하고 말 그대로 세기의 로맨스로서 창작물에서도 흥하고 현대까지도 여러가지 이야깃거리를 안겨주고 있다. 고려버젼 로미오와 줄리엣이라는 표현이 과하지 않을 정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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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시모토노미야 마사코 (이방자)

 

 

나시모토노미야 모리마사 왕의 딸이자, 조선 왕조 유일무이한

외국인 세자빈.

 

이방자 평전  <세월이여, 왕조여> 내용중..

 

14세이던 1916년 8월 3일 아침, 별장에서 무심히 신문을 집어든 이방자는 깜짝 놀란다. 자신의 사진과 조선 왕세자 영친왕 이은의 사진이 대문짝만하게 실려 있고, 자신과 영친왕 이은이 결혼하게 될 것이라는 기사가 실려 있었던 것이다. 도저히 납득할 수 없는 사실에 머릿속과 눈앞이 어지러워 신문의 활자가 커졌다 작아졌다를 반복했다. 신문을 들던 손과 다리가 후들후들 떨렸지만 안간힘을 쓰며 다시 신문을 보았지만 틀림없는 이방자 자신의 얘기였다. 이방자는 쓰러질 것처럼 휘청거리다 믿을 수 없는 현실에 눈물만 줄줄 흘렸다.

 

 

어느새 어머니 이츠코 비가 그런 이방자의 모습을 지켜보고 있었다. 이츠코 비 역시 미안하고 괴로운 표정으로 눈물을 흘리고 있었다.

 

 

 

"많이 놀랐겠지만, 어쩔수가 없었다. 실은 저번에 궁내대신이 거듭 오셔서 폐하의 뜻이니 아무쪼록 받아들이라고... 여러 번 사퇴의 말씀을 드렸으나 선일(鮮日) 유대를 위해, 일반 백성에게도 교훈이 된다는 폐하의 뜻이니 받아들이지 않을수 없었다. 그러니 너도 괴롭겠지만..."

 

 

 

어머니 이츠코 비가 빌다시피 말하자, 그녀의 부모님이 그녀가 알지 못하는 사이에 얼마나 고민해온 고통이 눈에 보이는 것 같았다. 그녀의 부모님은 이미 약혼 사실을 알고 몸이 마를 정도로 괴로워했으나, 차마 이야기를 못하고 차일피일 미루는 사이에 신문에 나버린것이다.

 

 

 

알고 보니 일본 정부에서 모리마사 왕에게 "큰딸을 조선 왕세자에게 시집보내라"고 강요했던 것이다. 약혼 발표가 있기 얼마 전, 모리마사 왕은 궁중에 불려갔다. 황태자비 간택 결과를 알려주겠거니 하고, 한편 장녀 마사코(이방자)가 황태자비로 간택된 것이 아닌가 하는 기대감에 가벼운 발걸음으로 갔다. 그러나 "마사코 공주를 조선 왕세자 이은에게 시집 보내라"는 뜻밖의 요구에, 모리마사 왕의 그 기대감은 산산조각이 났다.

 

 

 

'왜 하필 내 딸인가, 그 힘들고 큰 일을 짊어지고 내 딸이 어떻게 견딜 것인가?'

 

 

결국 모리마사 왕은 확답을 하지 못하고 집으로 돌아와, 아내 이츠코 비와 함께 며칠간 밤을 새는 고통을 겪어야 했다. 이츠코 비는 "두 딸뿐인데…" 하고 눈물까지 흘렸지만, 빨리 대답하라는 궁내대신의 독촉에 어쩔 수가 없었다.

 

 

 

(중략)

 

 

 

'도대체 그것이 어떻단 말인가? 조선은 지금까지 나와는 전혀 관계가 없던 먼 나라였을 뿐인데.'

 

 

그녀의 약혼자가 된 영친왕에 대해 생각하지 않을수가 없었다. 그녀는 영친왕 역시 그녀처럼 약혼 사실에 영친왕의 의지가 아니였고 그녀를 원망할거라고 생각했다.

 

 

그녀의 부모는 "이은 왕자님은 영특하신 분이라니까"라고 위로했지만, 그녀는 영친왕이 어린 나이에 약소국의 인질로서 일본에 왔고, 생모 순헌황귀비 엄씨의 임종을 지키지못한 영친왕에 대해, 약혼 전까지는 궁중에서 멀리보면서 동정했지만, 지금은 정략결혼을 하지않을수 없게 된 영친왕 역시 그녀 자신과 같은 희생자라는 친근감이 솟기도 했다.

 

 

 

여름방학이 끝나고 새 학기가 시작되어, 이방자는 애써 아무렇지 않은 듯 가쿠슈인 여학교 중등과에 등교했다. 학우들은 그녀의 약혼을 축하해 주었지만, 일부 친구들은 그녀가 외국인과 결혼하게 된 것을 못마땅하게 여기는 듯도 했다고 한다. 조선 왕세자와의 결혼을 대비하여, 그녀는 방과 후면 집에서 따로 가정교사에게 조선의 역사와 문화에 대한 교육을 받았다. 이방자는 한일관계의 숙명적인 것을 어렴품이 느끼면서, 하루아침에 황태자에서 왕세자로 떨어진 영친왕의 처지에 대해서도 생각했다. 이제 자신의 약혼자의 일이라고 생각하니 무척 슬프게 느껴졌다.

 

 

 

영친왕과 그녀의 결혼에 대한 조선 내에서의 반일감정, 영친왕의 강경한 거절 등을, 물론 당시 그녀는 전혀 알지 못했다. 아무도 그녀에게 그런 사실을 해주지 않았고 오히려 "조선 왕실에서도 일본 황족과의 결혼을 원했으니 너를 환영할 것이다" 하는 식으로 그녀를 위로하려고만 들었다. 

 

 

 

그리고 결혼 당시 또 하나 그녀를 마음을 무겁게 했던 것은 영친왕의 본래 정혼녀 민갑완 규수의 일이었다. 민갑완이 황태자비로 간택된 11살 때, 두 사람은 간택의 의미도 모른 채 천진난만하게 같이 뛰어놀며 지냈으나, 영친왕이 조선을 떠난 후 물론 서신의 왕래 같은 것이 없었고 두 번 다시 만날 기회도 없었다.

 

그렇게 덧없는 인연이지만 민갑완은 조선의 관습으로는 황태지비로 간택된 후 파혼해도 다른 사람과 결혼 할 수 없어 평생 혼자 지내야했다. 

 

(실제 민갑완은 일제의 압력으로 사실상 파혼당한 뒤 거의 쫓겨나다시피 상하이로 망명했고, 민갑완의 아버지는 그 충격으로 홧병이 도져 사망함)

 

 

 

'그럴수가 있을까? 그것은 한 사람의 인생을 완전히 매장하는 일인데 -. 그 규수의 슬픔과 고통이 얼마나 클까?'

 

 

같은 여자의 입장으로 나보다 더 불쌍한 사람이 그 규수라는 생각을 하면 민규수에게 죄를 지은 듯 미안한 생각에 가슴이 답답해지곤 했다.

 

 

그러면서도 한편으로는 영친왕도 말은 없었지만 속으로 민규수의 일을 괴로워하고 때문에 그녀의 결혼 생활에 검은 구름이 끼지 않을까하고, 그녀는 결혼 후에도 여러번 이 문제로 고민을 했다. 마치 남편의 옛 애인에 대한 질투와 불안을 버리지 못하는 그런 여자의 심정이 있었다. 

 

 

 

남편 영친왕의 친일 행각에도 불구하고, 본인은 광복 후에도 한국에 계속 남아서 조선 마지막 왕족들을 돌봐줬고

국적을 묻는 질문에도 "한국인입니다"라고 단호하게 대답할만큼 한국인으로 살려는 의지가 컸으며

어려운 이웃들에 대한 각종 사회봉사 활동이나 장애인학교 설립 등의 행보로 한국에선 이미지가 좋은 편

 

말년에는 경제적 어려움에 시달리며 병원에서 초라하게 죽어갔음에도 

한국 주재 일본인 기업가 부인들이 병문안을 와서 '무엇을 드시고 싶으세요?'라고 물었을때

"어렸을 때 먹었던 이런 이런 요리들이 참 맛있었지요"라고 하는데 

다들 재벌가 사모님이었던 그 부인들조차 들어본적이 없는 음식이라 '역시 황족 출신이구나' 다들 감탄했다는 일화가 있음

 

 

 

+) 그 외에도 고려 왕 여러대에 걸쳐서 시집왔던 그 외 몽골 공주들과 

(물론 황제의딸은 제국대장공주 단 한명 뿐)

 

가야시대 허황옥도 있지만 이 분은 아직 전설과 설화의 영역으로 보는게 맞을듯...


다만 조선 초기에 명나라 공주가 조선왕실에 시집오려는 혼담이 논의된적도 있긴 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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