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 삼국지)유비는 왜 이릉대전을 일으켰는가
본문
유비가 관우와 장비의 죽음에 빡돌아서 64만 대군을 끌고 가서 육손한테 털려 잿더미만 남기고 돌아왔다는게
널리 알려저 있는 이야기다
그래서 많이들 "유비 ㅉㅉ 제갈량이라도 데려가지"하는데
사실 군사도 연의에 나온 64만이 아니라 8만정도고, 그것도 병참 유지를 위해 진군하면서 군데군데 배치시킨 결과 실제로 전장에 있던건 4만명 정도다
그렇게 알고있는 만큼 큰 패배는 아니라는 거다
물론 인구가 100만 언저리인 촉한으로는 4만 이상의 손실은 크나큰 손실이긴 하지만
유비가 털린데는 몇가지 요인이 있다, 사실 질 수 밖에 없었다
1. 촉의 특급 인재들이 관우 사후 전후로 오지게 죽었다
방통은 촉 정벌때, 법정 황충은 이릉대전 1년전, 관우 장비는 다들 알고 있는대로다
마초도 일어난 해에 죽었는데 살아있었어도 한때 군벌이었던 인물, 그것도 마초 같은 SSS급 능력자에게 군사를 맡길 유비가 아니다
그래서 위연 조운 같은 남은 인재들은 그래도 한중같은 본국 요지에 냅둬야 했고 2군 유망주들만 데려갔다
그래서 듣보잡인 풍습, 장남 같은 장수들이 삼국지 메이저리그 첫 출전에서 패하고 그대로 역사속으로 사라지게 된다
그 반대로 오나라는 육손을 제외하고도 주연, 반장, 한당, 서성 등 뛰어난 장수들이 지키고 있었다
사실 황권 같은 특급 인재들도 몇몇 데려가긴 했지만 매우 중요한 병참선과 후방을 지키는데 배치해서 사실 전선에서 촉 네임드는 유비뿐이었을 정도
2. 유비도 꽤 뛰어났지만 육손이 더 뛰어났다
유비 본인도 훌륭한 군재인건 맞다
도겸, 유표, 원소 등이 떠돌이인 유비를 받아주고 최전방 지역을 지키는데 넣어준데는 다 이유가 있다
막말로 임시로 땅 받고 거기 전선을 막아주는 객장인 것이다.
공손찬 아래서 원소 막고, 도겸 아래서 조조 막고, 원소 아래서 조조치고, 유표 아래서 조조 막고
유비가 원술 친다고 구라까고 조조한테 군사 받아낼 수 있던것도 다 유비의 군재가 어느정도 있기에 내준 거다
대충 아무나 그렇게 막 군사 내주고 최전방 맡길 정도로 삼국시대는 만만한 시대가 아니다
실제로 박망파 전투, 적벽때 촉의 전공, 입촉, 한중공방전 등등 다 유비의 업적이다, 제갈량 아니다
제갈량은 사실 유비 죽을때까진 성도에서 행정 업무만 보고 있었다
근데 육손이 더 뛰어났을뿐
유비도 A급 지휘관이었지만 상대가 갑자기 듣도보도 못한 SSS급 지휘관을 꺼낸 셈이다
결국 인재풀에서 성능차가 너무 커서 결국에는 질 수 밖에 없던 것
유비도 2군 장수들로 이길 확신이 없었을 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럼에도 유비는 가야 했다
형주 때문에
이게 삼국지 당시 지도인데
촉은 익주, 오는 양주, 그리고 중간의 형주가지고 싸우는 판국이다
이렇게 보면 익주도 참 넓어보이는데 이게 함정이 있다
아직 강남 개발이 이루어 지지 않은 시대라서 인구 밀집지인 소위 "꿀땅"을 추려내보고
위를 제외하면 여전히 중앙집권이 안되었던 나라들임을 감안하면
실질적인 유효 영토는 이렇다
괜히 국력차, 인구차가 위:오:촉 = 5:2:1이 아니다
따라서 촉 입장에서는 형주가 매우 귀중했고
유표 사후 이후부터 쎈놈 편에 붙는 습성이 있던 형주 세력가들이 완전히 오의 지배에 흡수당하기 전에 유비는 다시 흔들고 찌르려 했던 것이다.
형주에 대한 오의 지배가 굳기 전이 기회였던 것
그리고 이 판단은 적중했던게
형주도 없고 상용도 위 수중에 떨어진 이후 촉은 위를 칠 방향이 북벌밖에 없었고
위는 그 한군데만 틀어막으면 되었다
그리고 실제로 위는 조진-사마의-곽회-진태-등애라는 촉 입장에선 혈압 터지는 라인업으로 촉의 북벌을 모조리 막아낸다
꿀땅임을 빼고도 형주라도 있었으면 2로, 3로 진군도 가능해서 위의 병력을 분산시킬 수도 있었다는 것
촉의 미래는 형주를 잃고 이릉에서 패배한데서 닫힌 셈이다
그렇기에 유비는 무리해서라도 오로 향했고 육손에게 패배했다
암튼 관우의 복쑤!!하면서 무지성 꼴박한건 아니다 이 말이야
글재주 없는 내 글 읽느라 고생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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