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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차대전에는 여러가지 전술적 시도가 있었는데 그 중 하나가 비행기를 이용한 공중 폭격이었다.

창이 발달하면 방패도 발달하는 법. 세계 각국에서는 비행기의 접근을 조기탐지하기 위한 방책으로 대공청음병이란 병과를 생각해낸다.


이들이 사용하는 음향탐지기는 아주 원시적인 것으로, 먼 거리의 소리를 물리적으로 증폭하는 것이었다.

이러한 노력을 바보 같은 짓이라고 비웃는 현대인도 있지만 의외로 당시에는 꽤 쓸만했다.


당시 비행기의 시속은 70~150km/h 사이로, 그렇게 빠른 속도로 이동하는 물체는 당시에는 비행기 뿐이었다.

때문에 숙련된 음탐병이라면 테스트 스펙 상으로는 최대 60km 밖의 비행기의 소리를 잡아낼 수 있었다.

하지만 실제로는 전장의 소음 때문에 숙련병으로써도 30~35km가 한계였다.

이러한 거리는 악천후 시에는 더욱 짧아졌다.


비행기의 폭격능력이 제한되고 생존성이 떨어지는 당시로써는 30km 밖의 폭격기를 탐지하는 것만으로도 큰 도움이 되었다.

이런 대공청음기는 2차대전 후기까지도 사용되었다.


사실 전파레이더의 원리는 1886년 하인리히 헬츠라는 독일 과학자에 의해 발견되었다.

독일에서는 이 발견을 이용하여 1904년 선박간 충돌을 방지하기 위한 민간 선박용 레이더를 상용화 하였다.

그러나 히틀러는 이 발견을 개무시하였고, 레이더 연구비를 로켓 개발비로 돌리려는 노력을 하였다.


반면 영국군에는 휴 다우딩이라는 영국 공군 총사령관이 있었다.

휴 다우딩으로 말할 것 같으면 1차대전 때 비행대대의 참모로 커리어를 시작하였고 2차대전 초기인 1939년에 퇴역이 예정된 장성이었다.

그런데 1차대전이 발발하자 제 16비행대대에 배치된 휴 다우딩은 대대장 휴 트렌차드(영국 공군의 아버지)가 파일럿을 지나치게 혹사한다고 판단하였다.

다우딩은 즉시 트렌차드를 찾아가 따졌고 트렌차드가 파일럿에 대한 처우를 개선할때까지 충돌하였다.

이 일로 트렌차드와 그 제자들에게 밉보였다.


또 다른 일화로는 2차대전 발발 후 패배중인 프랑스군을 지원하라는 처칠 수상의 지시에 대하여

전쟁은 영국과 나찌화된 전 유럽의 장기전으로 흐를 것이고 이를 대비하기 위해 영국군의 공군력을 보존해야한다

는 요지의 편지 한통을 보내고 육군성, 해군성, 국방부, 의회의 공군 출동 요청을 그대로 다 씹고 버텼다.


이 두 가지 사례 외에도 휴 다우딩은 정적을 많이 만들었으며 이는 훗날 트렌차드 파의 정치적 공격으로 해임되는 이유가 된다.


뒷일이야 본론으로 돌아가면, 1935년, 휴 다우딩은 영국 항공부의 소개로 왓슨 와트라는 발명가를 만나게 된다.

이 사기꾼 같은 땅딸보는 다우딩에게 영국을 위한 비밀병기를 보여주겠다고 호언장담한다.

그리하여 2월 26일 전파 레이더 테스트가 열렸는데, 왓슨 와트의 전파레이더는 1만 2천미터 밖의 스핏파이어 항공기를 잡아내었다.

그 순간 땅딸보는 휴 다우딩에게 이렇게 말했다 "영국은 다시 섬이 되었습니다"

그 이후로 휴 다우딩은 전파 레이더의 열열한 지지자가 되었다


당시에는 음향레이더를 주로 쓰고 적외선 레이더를 보조로 쓰자는 쪽의 지지자가 상당했다.

의회 또한 전파레이더는 돈낭비라고 생각하는 이들이 많았다.


특히 처칠 수상의 경우 프레데릭 린트만의 지지자였는데

프레데릭 린트만은 영국 항공분야의 권위 있는 보수파 과학자였으며, 전파레이더를 아주 좋아하지 않았다.

독일의 V 시리즈 계획에 대한 첩보를 영국에서 탐지했을때도 여러 자료를 조목조목 반박하며

V-1미사일 같은 것은 허구일 뿐이라고 주장했을 정도로 신기술에 대해 적대적이었다


이로 인해 의회에서 여러 차례 간섭이 있었지만 다우딩은 전부 씹었다.

다른 관료들을 찾아가 항의하거나 처칠에게 바득바득 대들기도 했다.

의회가 레이더 기지 건설이 돈낭비라고 따지자 레이더 기지에 콘크리트를 발랐다

1938년 겨울에는 20개의 레이더 기지가 완성되었고 다음해 여름까지는 전부 콘크리트가 처발렸다


그리하여 훗날 다우딩 시스템이라고 불리게되는 체인 홈 레이더 시스템이 완성되었다.


그리고 1940년 8월 1일 히틀러의 명령으로 바다 사자 작전이 시작되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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